운송시장구조상 ‘속도제한장치 의무화’ 있으나 마나
비상자동제동장치 등 차량 구입시 기본 사양으로 해야

▲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에서 난 대형 관광버스의 교통사고

지난 5월 남해 고속도로에서 대형 관광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큰 인명사고가 난데 이어, 며칠 전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에서 대형 관광버스의 5중 추돌사고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연이어 발생한 대형 차량의 끔찍한 교통사고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금 ‘대형차 포비아(phobia/공포)’에 빠져있다. 제도와 차량에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형차 교통사고예방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일반차량과는 달리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최근에 그런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로교통공단이 조사한 고속도로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승용차 사고 발생 건당 사망자 비율은 3.5%인 반면, 대형 버스는 8.22%, 대형 화물차는 무려 10.36%로 나타났다.

그동안 대형 차량이 ‘도로 위의 흉기’, ‘달리는 폭주 기관차’ 등과 같은 오명을 쓰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대책과 대안 마련이 시급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현재 교통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형 화물차 및 버스에 여러 안전장치가 부착되거나 장착이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유럽 및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 여기에 부실한 단속 등 정부의 후진적인 정책 때문에, 그 실효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법규…속도제한장치, 첨단 제동장치만 의무화
지난 1995년 10톤 이상 승합차와 16톤 이상 또는 적재중량 8톤 이상 화물차를 대상으로 최고속도제한장치 의무화가 시행했다. 이후 2013년부터 대상이 확대돼 현재는 모든 승합차와 총중량 3.5톤 초과한 화물·특수차의 경우 최고시속이 각각 110km, 90km로 제한되는 속도제한장치를 의무화했다. 더 나아가 불법개조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안전법안에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제동력지원장치(Brake Assist System, BAS)’, ‘ABS(Anti-lock Brake System)장치’ 등 첨단 제동장치와 더불어 차량 주행정보를 기록하는 운행기록장치도 의무화 대상에 포함 시켰다.

하지만 화물차 및 버스 등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형 차량의 속도제한장치 불법개조를 강력히 단속하고 운행시간 제한 등 강력한 규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 될 뿐이다. 사후약방문식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법적 의무화가 돼 있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와 같은 첨단 안전장치를 도입, 기본 사양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 제기되고 있다.

운송시장 근본 개선과 제도적 지원 전제돼야
정부는 최근 첨단 안전장치 의무화와 더불어 운행시간 의무규정을 발표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안전운전을 위한 규제의 연장으로, 기존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먼저 규제의 대상이 되는 사업용 대형차와 이들이 속해있는 운송시장은 지입사와 개별 운송사업자 간 ‘지입’형태의 단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차량이 자신의 것이라도 과적, 무리한 운행시간 등 화주 및 지입사의 과도한 화물운송 조건을 외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버스업계와 화물운송업계 모두 해당된다.

운송사업자가 직접 차량을 구입해, 운전자를 고용하는 해외 운송시장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하는 개념이다. 선진국들은 일정한 시간대, 그리고 정량의 화물을 실어나르는데 철저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국내 대형차 운전자들은 속도제한장치가 불편하기만 하다. 차량 검사시점에 맞춰 장치를 뗐다, 달았다하는 게 다반사다. 실제로 지난 5월에 버스, 화물차 등 대형차 운전자 5,500명이 속도제한장치를 불법으로 해체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게다가 첨단 안전장치의 의무화는 차량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상용차 제작사들이 현재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대형차 대부분에 대해 첨단 안전장치를 옵션사양으로 운영하고 있다.

본지 취재결과 현재 옵션사항으로 첨단 안전장치를 추가하려면 최소 130만 원에서 310만 원가량의 금액이 추가로 들어간다. 지난해 유로6가 도입되며 차량가격이 상승한 데 이어 정부의 보조금 없이 첨단 안전장치 의무화가 된다면,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속도제한장치, 첨단 안전장치 등 차량에 부착할 수 있는 장비만으로는 결국 문제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라며, “운송시장 개선방안과 제도적인 지원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첨단안전장치 의무화, 운행제한 의무규정
정부는 최근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버스·화물 등 대형 차량에 첨단 안전장치를 의무화하고 운행시간을 제한해 운전자의 휴식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내년 1월부터 차체가 11m를 넘는 승합차와 총중량 20톤 이상 화물·특수차는 첨단 안전장치인 ‘차로이탈경고장치(LDWS)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한다.

‘차로이탈경고장치’는 주행차로에서 벗어날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장치로써 졸음운전 등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며, ‘비상자동제동장치’는 주행 중 전방 충돌상황을 감지해 차량을 제동시키는 장치다.

또한, 4시간 연속운전 후 운전자에게 최소 30분의 휴식시간을 갖도록 법제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버스의 경우 중대 교통사고 유발 운전자에 대해 운수종사자 자격을 40~60일 동안 제한하고, 특히, 전세버스 대열운행 등 대형 교통사고의 주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 운수종사자 자격정지 5일에서 30일로 강화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번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 대책’은 사업용 차량의 운전실태를 파악하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밤낮으로 일해 운송수익을 올려야 하는 현 사업용 차량의 운전자 입장에서 30분 정도의 휴식보다는 ‘충분한 휴식과 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있으나 마나한 휴식 가지고는 ‘졸음운전’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차량의 안전운행을 도울 수 있는 각종 안전 시스템의 개발과 도입을 하루라도 빨리 차량에 적용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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